2024. 1. 2. 22:10ㆍPLAYS
톰 스토파드 희곡 중 제일 좋아하는 연극은 아카디아(혹은 아르카디아 Arcadia) 입니다. 아카디아 내년엔 올라온다 과학연극 붐은 온다 몇 년 째 외친 게 무색하게도.. 2023년 한예종에서 학생공연으로 11월에 올렸더라구요. 근데 이걸 2개월 지나서야 알게 되어 그저 눈물만 흘리는 중. 학공이든 낭독이든 괜찮으니 아카디아 올라오면 삐삐 쳐달라고 얘기했잖아 어흐흐흑... 담엔 봉화라도 올려주오.. 또 남탓하려다가 아차 내가 먼저 봉화 선빵치면 되잖어.
그래서 검색어에 걸리도록 적어보는 아카디아 연극 관련 글.
혹시나 이 글을 보신 분들이라면..국내 아카디아 연극 올라올 때 소식 꼭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드립니다.
톰 스토파드 번역극 곧 올라 옴. 내가 봄ㅇㅇ 서동요 기법으로 외쳤음에도 최근 올라온 건 2019년 명동 예술극장의 '록앤롤 rock n roll'과 2023년 예술의 전당에서 올린 '셰익스피어 인 러브 shakespear in love' 가 있습니다. 체코 혁명이랑 셰익스피어라니.. 제일 관심없는 것만 올라오고...
그래도 명동예술극장에서 2018년 9월 이후 올라가는 공연들의 프로그램북은 무료로 제공하고 있어서. 록앤롤은 공식홈페이지 로그인하면 볼 수 있습니다 (링크) 당시 인터미션 포함 3시간짜리 연극이라 미친 거 아냐 누구 허리를 암살시키려고 했는데 플북내용이 알차서 괜찮았어요. 하지만 기억에 남는 건 체코식 인사법(아호이 라고 먼저 말건네면 당신도 체코사람과 칭구칭구!)과 코끼리 모자 쓰고 춤추는 강신일옹 뿐.
그나마 가장 가능성 있는 건 nt라이브에서 찍었다던 가장 최신작인 '레오폴트슈타트 Leopoldstadt' 라도 올라오겠지.... 하고 적다가 아니 2022년에 일본에서 올라왔냐 부럽다! 아카디아도 2018년 쯔음에 올라갔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기도 성공한 덕후가 있나보다 부럽다!
그리고 이 글을 적게 된 계기도 단순한 게, 수작으로 잘 알려져 있는 SF인디게임인 아우터 와일즈 outer wilds가 최근 스위치에 이식되었길래 멀미를 억누르고...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외치면서 플레이하는데요. 주제나 테마가 아카디아를 떠오르게 만들더라구요. 그래서 올해 목표는 아카디아 텍스트 다시 읽기로 잡으면서.. 읽다가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인용, 배경, 용어들 정리해보려는 포스트.
이 내용을 몇 년 전 영미희곡 과제하며 톰 스토파드와 아카디아 영업한 친구에게 바칩니다...어흐흑 가만안도...
[1막 1장]
1막 1장 요약 :
- 연극은 토마시나가 그녀의 가정교사인 셉티무스에게 '육체적 포옹'에 대한 정의를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시들리 파크에 머무르는 시인인 채터는 셉티무스가 채터의 아내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소문을 듣는다. 그는 아내의 명예를 모욕한 대가로 결투를 신청한다. 그러나 셉티무스는 교묘하게 채터의 작가로서의 허영심에 아첨하며 화해하게 된다.
그 후 토마시나의 어머니인 크룸부인, 캡틴 브라이스(크룸부인과 남매), 정원사 녹스가 방에 들어온다. 크룸부인은 정원을 다시 만들려는 녹스의 계획에 불평한다. 그녀에겐 시들리파크는 이미 완벽한 '아카디아'이며 더 나아질 수 없을 거라 믿는다. 셉티무스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떠난 뒤, 토마시나는 시들리파크의 조경 계획 스케치에 은둔자를 그려넣는다.
(장소 : 1809년. 영국 더비셔의 시골에 위치한 대저택인 시들리 파크)
아카디아 Arcadia
그리스 펠로폰네소스에 있는 산. 고대 그리스 정원생활의 이상향이자 현재는 상상 속 천국과 같은 '목가적인 이상향'을 뜻하는 일반명사로도 사용됨.
'영국인은 우유와 고기를 먹고 산다(lacte et carne vivunt)'
갈리아 전기에서 전쟁에 대한 카이사르의 논평을 라틴어로 인용한 것.
'씨앗이 딱딱한 땅에 떨어져 유감이다'
마태복음 13장 20절. 씨앗과 땅에 대한 비유로, 돌밭에 뿌려져 쓸모없어진 씨앗과 같다고 비아냥 거리는 중.
'오난의 죄'
창세기에 나오는 유다의 둘째 아들. 대를 잇기 위해 남편을 잃은 형수랑 동침하라고 시켰더니 유산 더 많이 받으려고 의도적으로 '씨앗을 쏟는 행위' 즉 자위만 해서 신의 벌을 받고 사망.
셉티무스와 토마시나 둘 다 후손 볼 목적이 아닌 부도덕한 성관계를 예시로 들며 말장난 하는 중.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1630년 페르마가 제시한 미해결문제. 책 여백이 부족하여 증명을 담아낼 수 없다고 하여 오랫동안 난제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1993년 초연이 올라오고 2개월 뒤에 영국의 수학자인 앤드루 존 와일스경이 이를 증명해버림. 스톰파드는 이에 대한 내용을 추가해야 된다며 공연 플북 재인쇄룰 주장했다고.
극 쓸 땐 몰랐겠지 설마 이 난제가 공연 올라온 뒤 영국에서 풀릴 줄은...
'쌀푸딩 이론'
13세의 천재 토마시나는 지금 우주에 존재하는 에너지 양은 일정하며, 어느 방향이든 이동이 가능하다는 뉴턴적인 명제에 반론을 제기하는 중임. 1809년엔 아직 카오스 이론이 발견되지 않았던 때였음. 그당시 사람들은 결정론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둔 뉴턴이론 - 모든 에너지는 일정한 질서로 움직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
그와 반대로 토마시나는 되돌릴 수 없이 무질서로 향하는 카오스이론의 예시를 가장 친숙한 쌀푸딩으로 풀어낸 거였음.
캠브릿지에서 그 당시 뉴턴의 이론과 수학, 자연철학을 배웠던 지식인 셉티무스는 어린 토마시나의 이론을 주의깊게 듣지 않았음. 그러나 바로 다음 장면에서 셉티무스 스스로도 자각하진 않았으나, '잼들은 계속 섞이면서 완전히 분홍색이 될 때까지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며 에너지는 움직일수록 무질서로 향하며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열역학 제 2법칙 예시를 본인도 자각하지 못했으나 구체적으로 설명함.
'신은 뉴턴학파라고 생각하세요?'
셉티무스에게 대수학을 배우는 중인 토마시나는 모든 것은 방정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뉴턴의 이론을 예시로 들면서, 생명에 대한 공식이 있다면 이 모든 게 예측 가능하니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디에 있는가 묻는 중.
그러면서 뉴턴의 공식대로 세상에 일정한 질서가 있으니, 페르마의 난제 역시 사람이 풀 수 있기에 존재한다고 말하는 똑똑이 토마시나.
존 밀턴(1608 – 1674) John Milton
실낙원을 쓴 영국시인. 원죄와 구원, 낙원의 상실에 대한 책이라서 작중에서 의도적으로 작가가 언급된 듯.
로버트 사우디 (1774-1843) Robert Southey
워즈워스, 콜리지와 함께 언급되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 채터 최애작인 '파괴자 탈리바'와 '매독'의 저자.
왜 언급되나 했더니만, 셉티무스가 앞에서 결투 하자는 채터 진정시키려고 오 저는 실존하는 최고 시인들 중 하나를 죽이고 싶지 않은디요ㅇㅇ 입 털어서. 그래서 지금 채터가 죽일테다 씌익 하면서도 귀 팔랑거려서 존 밀턴(셰익스피어에 버금갔다는 시인)은 죽었고, 최애였지만 지금은 한물간 사우디와 버금가는 거냐고 뽕차면서 자기 최애작들 언급하는 중.
참고로 이 사람도 이후 언급될 바이런이랑 엮인 적 있음. 1809년에 영국시인과 스코틀랜드의 논평가들(English Bards and Scotch Reviewers)에 익명의 풍자시집으로 저격한 적 있어서. 이건 1막 2장에도 소개됨.
프란시스 제프리 경 (1773- 1850) Lord Francis Jeffrey
판사, 비평가이자 에딘버러 리뷰의 편집장이었음. 1806년에 자기의 작품을 비평한 시인과 결투하기로 합의했음 (경찰에 의해 중단되었지만. 근데 나중에 확인하니 결투에 가져왔던 총에 총알이 없던 게 밝혀져서 안죽일 의도였네! 시인과 극적으로 화해함) 셉티무스가 계속 아첨하니까 시인부심 차오른 채터가 계속 영미시 관련된 인물&사건 인용하는 중.
홀란드 경 (1773-1840) Lord Holland
영국의 정치인. 마찬가지로 바이런이 위에 언급된 '영국시인과 스코틀랜드의 비평가들'에서 같이 저격했음.
지금 채터는 자기가 쓴 시집이 비평가에게 개도 안먹일 쓰레기라고 욕먹었다고 징징대자 셉티무스는 오 내 친구여 비평가들은 탁자에 앉아 시인들을 평가하는 놈들이라고요 동의하는 중임. 거 입 잘터네...
피카딜리 레크리에이션
이건 작중 허구로 등장하는 문학 비평 전문 출판사.
정자(gazebo)
정원에 있는 오픈형 구조대. 브라이스가 말하는 밀회장소(보트창고, 중국식 다리, 관목숲)은 모두 당시의 정원 구조물에 필수 요소 였음.
험프리 렙턴 (1752-1818) Humphry Repton
유명한 조경 정원사. 정원의 전-후 그림을 보여주는 '레드북'을 만든 것으로 유명함. 사진처럼 공사 전 정원 드로잉을 그린 뒤 그림 일부를 붙여 공사 후 모습을 비교하기 위해 보여줬는데 정원사 녹스는 지금 이 사람방식을 명백히 모방한 것.
근데 너무 조경 디자인이 모-던해서 고지식한 구시대적 인물인 브라이스에게 이게 영국식 정원이니 코르시카 산적들 점령지이니 욕먹는 것. 대충 이 차이일 듯.
왜냐하면 녹스의 추구미는 이후 언급 될 픽쳐레스크 스타일이고, 이게 18세기 후반~19세기 초 영국에서 유행한 조경 스타일이라 1809년엔 너무 앞서나감. 그래서 이런식으로 인공적으로 무너진 성곽, 고딕식 정자, 별장 등이 포함되니 사람이 왜 이리 어두워 고딕소설 좀 그만 봐 하는 중.
사진 찾다 적절한 예시 발견해서 추가. 녹스가 제시한 건 이런 비포-애프터 아니었을까.
살바토르 로사(1615-1673) Salvator Rosa
이탈리아의 유명한 풍경화가. 17세기에선 너무 혁신적이고 어둡고 난해한 주제를 다뤄서 비판도 많이 받았음.
녹스는 지금 잘못 알아들어서 토마시나가 구세주(Salvator)라고 한 걸 살바토르(Salvator rosa)에 빗대었다고 생각했음.
'Kew'
1759년에 설립된 왕립 식물원. 뒤의 사진과 같이 5층짜리 중국 탑, 중국식 집, 중국식 다리가 있었음.
영국인들이 오리엔탈리즘 맛보려 할 때 자주 갔나 보다.
은둔처 hermitage
18세기의 부유한 사유지에 있던 정원 장식용 은둔처. 당시엔 자연의 불규칙성을 보여주기 위해 과도기적인 아이디어가 많았음. 세상에서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은둔처의 경우엔 귀족들에게 명상, 지적 추구 등의 허영을 채우기 위한 장소로 인기많았었고.
은둔처는 실제로도 은둔자들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며 과거엔 관상용 전업 은둔자를 구하기 위해 신문에 광고까지 냈었다고 함. 조건이 침묵유지, 염소털옷 입기, 머리,손톱,수염 자르지 말기 등 귀족들의 관음증을 채워주고 신비주의 고수하며 7년 동안 유지하면 약 1억원이 넘는 보상을 받을 수 있었음.
뭐야 혼자 7년간 고립되어 1억받기 vs 걍 농사하기의 현대버전이잖어.
픽쳐레스크 스타일
녹스의 추구미. 불규칙한 폐허, 낭만적인 야생으로 가득한 스타일로 19세기 초에 유행했던 영국식 정원 스타일.
'나 여기 아카디아에 있노라' Et in Arcadia ego
화가 니콜라스 푸생의 그림에 언급된 라틴어. 그런데 라틴어로는 아래의 3가지 의미로도 번역할 수 있고 크룸 부인은 첫번째 의미만을 얘기한 것. 그래서 토마시나는 ㅇㅇ 엄마 말이 다 맞죠 번역에 토 다는 거.
1. 내가 아카디아에 있다 = 나는 (평화로운) 낙원에 있다
2. 나도 한 때 아카디아에 살았다 = 할 수 있을 때 인생을 즐기라는 가벼운 경고
3. 아카디아에도 '나'는 있다 = 여기서 '나'는 죽음임.
낙원에도 죽음은 있을 거라는 불길한 경고. 1막 1장 마지막에서 셉티무스는 이 의미로 인용함.
우돌포의 비밀 The Mysteries of Udolpho'
앤 래드클리프(1764-1823)의 고딕 소설.
호레이스 월폴 (1717-1797) Horace Walpole
'오르탄토 성 the castle of Otranto'라는 섬뜩한 고성을 배경으로 한 고딕소설 양식을 개척한 소설가. 조경과 건축에서도 고딕양식을 추구했음.
크룸부인은 '오르탄토 성'도 앤 래드클리프의 소설이라고 착각했는데, 셉티무스가 그건 원폴의 소설이라 정정하자 녹스도 월폴도 정원사였냐고 덕질 동지 만난 것처럼 기뻐하는 거.
기록 천사와 (사냥)게임북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 나오는 천사. 누가 착한 애인지 나쁜 앤지 기록 천사는 알고 계신대. 사후의 상과 벌을 판단하기 위해 인간의 모든 행동을 기록하는 천사 중 하나.
더 깊게 파고들면, 토마시나의 말장난 부분은 이후 진행될 극 내용을 함축하고 있음. 기록천사(높은 곳에서 관객들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역사)와 게임북(새 사냥처럼 제한적인 정보만 기록되는 주관적인 역사)간의 대조를 통해.
1809년의 인물들은 대부분 편지, 시, 에세이, 기사 등의 기록물을 쓰는데 시간을 보냈으며 관객들은 이들이 대화보다 편지를 선호하는 걸 볼 수 있음. 이후 2장에서 등장할 20세기의 등장인물들은 그들이 나눈 대화나 삶 전체를 알지 못하며, 기록된 글들로만 추측하여 잘못된 추리를 하기 때문.
'황야의 세례자' St. John the Baptist in the Wilderness
토마시나가 나중에 덧그린 이 은둔자는 20세기의 인물에 의해 세례 요한을 닮았다고 언급됨. 그러나 20세기의 추측과 달리, 은둔자가 생기고 나서 스케치로 그려진 게 아니라 1809년에 그리고 난 뒤에야 시들리 파크의 은둔자가 생긴 거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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