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18. 17:32ㆍFormosa/대만 밴드
여름에 늘 차오동 앨범을 듣는다. 2019년 대만에 갔다가 우연히 듣고 입덕하게 되었는데, 당시에도 대만 인디계에서도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유명 밴드였다고. 2016년 1집 발행 후, 유튜브나 라이브 공연에서 싱글곡이 몇 곡 소개되었으나 2집이 완성되기 까지는 7년의 시간이 걸렸다. 작년 2023년 5월에 2집 《瓦合 와합》이 발매되었고. 그 중 마지막 곡 <但 damn> 듣다가 생각나서 써보는 글.
1. 대만 젊은 층을 대변하던 밴드의 성장
한국의 n포세대나 일본의 사토리 세대처럼 대만에는 2030세대를 뜻하는 단어로 '悶世代 답답한 세대'가 있었다. 최근에는 많이 안쓰는 걸로 보아 2010년대 중후반에 자주 쓰이던 신조어 아니었나 추측 중.
결이 좀 다를 뿐 동아시아 청년세대 대다수가 비슷한 고충을 갖고 있듯이.. 대만 역시 경제 불평등과 교육격차, 취업문제 등 개인의 성취로는 해결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그런 암울한 상황 속에서 젊은 층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밴드가 노 파티 포 차오동(草東沒有派對 초동몰유파대, no party for cao dong).
1집 《醜奴兒 추노아》 젊은 세대의 답답했던 심정을 그런지 록 스타일로 염세적으로 발산하는 음악이 가득하다.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자아추구와 반항, 분노를 토로하면서도 여전히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가득했다. 1집 마지막 곡인 <情歌 정가>의 마지막가사는 이렇게 끝난다. '殺了它,順便殺了我 악몽을 죽이고, 하는 김에 나를 죽여줘.'
6년 후, 이제 차오동의 멤버들은 20대의 치기어렸던 시절을 지나 30대를 지나가고 있다. 염세 이후 그들에겐 무엇이 남았나.
https://www.youtube.com/watch?v=uV2ex9L1j9I
2집 《瓦合 와합》은 1집에 비해 사회비판적인 내용이 줄어들었다. 2019년 처음 발표된 〈白日夢 백일몽〉은 기존의 차오동 음악과는 많이 다른 결이다. 함께 있었을 때의 아름다웠던 시간을 추억하지만 결국 혼자 남을 수 밖에 없다는 주제로, 차오동이 작곡한 인디공포게임인 환원의 엔딩곡 <還願 환원>과 비슷한 분위기다. 아마 당시 작곡한 게 영향받지 않았나 추측 중.
사실 환원 보다는 1집 본래 스타일이 맘에 들어서 좋아했던 거였는데.. 거 밴드가 성공하면 1집 이후 계속 같은 스타일로 갈 순 없지만 좀 서러움.
2집의 곡들은 작곡된 시간 순으로 나뉘면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집 이후 작곡했던 〈白日夢〉(2019), 〈床lie〉(2016), 〈八 B〉(2018). 〈老張 Chang〉(2014 전후).
그리고 2020년대 투어에서 선보였던 〈空 Space〉과 〈人洞山 The Human, the Hole and the Mountain〉.
제일 마지막으로 작곡한 곡들은 전 드러머였던 판판을 애도하기 위한 〈芽Shoot〉, 〈但 damn〉가 있다.
2. 그래도, 널 사랑해
'草東 차오동'은 타이베이 양밍산에 있는 근처의 도로 이름이다. 도로 양 옆으로 풀이 무성하지만 인적이 없을 뿐 스산하지 않는 거리다. 동창이었던 메인보컬 우두와 기타리스트가 주주가 우연히 이 거리에서 만나 '草東街左轉 차오동길 좌회전' 이라는 밴드가 결성되었는데, 멤버 교체가 여러번 생기다 보니 '草東沒有派對 차오동엔 파티가 없다'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2021년,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기에 대만에서는 해외에서 입국하면 방역법 상 무조건 코로나 격리 호텔에서 머물러야 했다. 그리고 차오동의 드러머였던 판판이 중국 공연을 끝내고 머무르던 코로나 격리 호텔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유서는 없었지만 정황상 자살이었다.
투어 취소와 멤버의 탈퇴, 페이스북에 차오동이 팬들에게 남긴 장문의 편지 이후 1년 반 이상의 공백기를 가지다가 2023년, 차오동은 싱글곡 <床 Lie>로 컴백을 알렸다. '看著窗外的光/分不清是路燈還是太陽 창 밖의 빛을 보는데, 가로등인지 햇빛인지 모르겠어' 라고 시작하는 곡은 강한 신디사이저와 드럼이 울부짖듯이 우울함을 내뱉고 있었다.
6년만에 나온 2집은 과거의 염세와 자조가 줄고 부드러워졌다. 여전히 <床>와 <缸>로 날카로운 감성은 여전하지만. 답답했던 젊은 세대의 폭발과 자아추구, 반항 이후 무엇이 남나.
차오동은 2집 마지막 곡인 <但>로 직설적으로 사랑한다고 외친다.
최근 중국어를 다시 배우면서 중국어 하는 친구에게 영업이란 이름의 츄라이츄라이 먹였는데... 다른 가사들은 옛 시조 인용이 많지만 이 노래에서 쓰이는 어휘는 거의 기초중국어에 가까워서, 가장 쉽고 보편적인 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여전히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곡이라고.
你說你不想在這裡
我也不想在這裡
但天黑的太快想走早就來不及
넌 이곳에 있기 싫다고 했지
나도 이곳에 있기 싫어
하지만 하늘이 어두웠는데 빨리 가고 싶었으면 진작 했어야지
Oh 我愛你
可惜關係變成沒關係
오 사랑해
관계가 변해버려 안타까운 건 괜찮아
(*말장난. 관씨 비엔쳥 메이관씨)
問題是沒問題
문제는 문제없어
(말장난. 원티 싀 메이원티)
於是我們繼續
그러니 우리들은 계속인 거야
제목의 '但 그러나'의 발음은 dàn이지만 영제는 damn이다. 처음엔 왜 이런 말장난을 했는지 몰랐는데, dan을 위의 말장난처럼 영어 발음대로의 다른 뜻으로 사용했다.
사실 '그러나'라는 중국어는 '但是'를 쓰는데, '但'만 쓰면 중국어 상으로 갑자기 '하지만!!!' 냅다 지른 것에 가깝다. 가사에서 但이 3번 나오는데, 다 떠날 때만 절박하게 이 단어를 쓰고 있고.
노래의 초반엔 너 여기 싫댔지 나도 싫었어. 세상이 어두운데 떠날 거면 진작 가지 그랬어 비아냥 거리다가, 감정을 참지 못하고 냅다 사랑해 외친다. 그 다음 가사의 沒關係메이관씨, 沒問題메이원티 둘 다 괜찮아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상대방의 죽음으로 우리가 변해버렸지만 괜찮다고 반복해서 말하며 관계를 이어나가자고 말하는 중.
拿著筆 想寫點東西
以為是武器能伸張正義
沒人理也沒關係
그 붓을 들고 획을 긋고 싶었네
그것을 무기로 삼아 정의를 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네
(*伸張正義는 사자성어)
이제 인륜도 없어도 괜찮아
至少我還有你
至少我還有
적어도 난 네가 있으니까
적어도 난 ... 있으니까
중국어는 사실 점 찍을 때까지 문장이 끝나는 게 아니다. 주술목이 다 있어야 하는데 갑자기 목적어 없이 끝나면 문장이 덜 끝난 것. 그말인 즉슨 '至少我還有..' 이후 문장으로 말을 못 끝낸 거. 중국어 어형이라 가능한 슬픔이라고.
但你離開了這裡
於是我們不再年輕
그러나 네가 이곳을 떠나버렸기에
우리들은 더 이상 젊을 수 없네
마지막 말은 가정형이 아니라, 네가 없으므로, 우린 더 이상 젊지 않아 뉘앙스에 더 가깝다.
젊다는 게 미숙하다, 청춘이다, 그런 뜻으로도 쓸 수 있지만 年轻은 근본적으로 젊음이라서. 너가 없기에 우린 젊을 수 없다는 건 그 반대로 우린 더 이상 그 시절의 우리일 수 없다는 상실에 더 가깝다.
모든 문장이 다 현재형인데 과거형인 了가 딱 하나 있는 게 '但你離開了這裡 하지만 너가 이곳을 떠나버렸네'고.
https://www.youtube.com/watch?v=ovTiSA9T-RU
유튜브의 공식 뮤비. 흑백의 영상은 차오동의 옛 드러머의 뒷모습을 시작으로 과거의 투어영상, 그들이 키우던 고양이와 대만 강아지(검고 귀엽다), 일상에서 찍었던 영상이 나오다가 얼굴이 가려진 채 문이 닫히는 컨테이너 박스로 끝난다.
사연을 모르면 그저 시간이 흘러 우린 더 이상 젊지 않다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사연을 알면 멤버들이 드러머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여전히 그리워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추도곡이었다. 초창기에는 음이 좋아서 계속 들었는데, 내용을 알고 나니까 얼마나 가사를 공들여 만들었는지 공감가서 더 슬퍼짐.
중국어 공부 열심히 해야지
참고
https://songstoryworks.com/albumreviews-no-party-for-cao-dong-the-cl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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