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28. 21:03ㆍPLAYS
(아우터 와일즈 스포일러, 결말까지 언급 있습니다)
첫번째 글에 이어서. 아우터 와일즈에 나오던 과학 이론 간략 소개.
1. 아우터와일즈와 양자역학 - 입자냐 파동이냐
인디 SF게임 아우터와일즈에 나오는 대표적인 과학이론은 양자역학이 있다. 초반 튜토리얼 구간의 박물관에서 등장하는 '양자 파편 Quantum Shards'은 플레이어들에게 게임 내 양자역학 개념을 심플하게 소개하는 예시고.
저 돌조각들은 한 곳에 위치가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나, 파편조각이 관찰자의 눈에서 벗어날 때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뭔데 그게 하다가 닥터후에 나오는 우는 천사 같은 거라고 하니까 아하 바로 이해. 역시 영국국민드라마야! 오타쿠 맞춤형으로 이해가 쏙 되네.
사실 양자역학에서는 저렇게 큰 비석에는 적용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에게만 해당되지만 SF니까.
양자역학의 실제 이론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례는 이중슬릿 실험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빛이 한 개의 틈을 통과할 땐 입자 형태지만, 두 개의 틈을 동시에 통과하면 검은 벽에 보이는 여러 개의 줄무늬(간섭현상)가 발생하는 파동 형태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빛을 극도로 약화시켜 하나의 광자가 된 빛을 두 개의 틈을 향해 보내면, 이론 상 광자는 입자가 되어 한쪽만 투과해야 한다. 결과는 예상과 달리 파동형태에서만 볼 수 있는 간섭현상이 발생한다. 마치 광자가 둘로 쪼개져 두 개의 틈을 통과한 것처럼.
그러나 광자처럼 미세한 소립자가 쪼개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의 광자가 동시에 틈을 통과해서 마치 동시에 두군데 존재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 광자가 입자가 되느냐, 파동이 되느냐는 관측 전까지는 미확정 상태였다가 관측 행위자체로 인해 고정된 상태로 나타난다.
양자역학의 이중슬릿현상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과 gif로 확인할 수 있는 예시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양자역학의 사고 실험에서 가져온 것이다.사실 슈뢰딩거는 관찰에 의해 결과가 달라진다니 이게 뭔 말도 안되는 헛소리요 불합리함을 증명하기 위해 이런 사고실험을 제안한 거지만.
이 사고실험 속 박스 안에 있는 고양이는 관찰자의 관찰 전까지는 소립자가 입자이자 파동인 형태로 존재하는 것처럼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다. 그러나 인간이 개입하여 관찰하게 되면 살아있거나 혹은 죽어있거나 둘 중 하나의 상태로 고정된다. 이게 뭔 헛소리요 싶지만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애매모호함 덕분에 sf에선 단골소재인 거고.
그래서 아우터와일즈에서 양자의 달에 있던 유일한 노마이인은 죽어있는 동시에 살아있는 상태가 되었고,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상태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2. 양자달과 양자중첩, 양자얽힘 현상
아우터 와일즈에서 등장하는 '양자의 달 quantum moon'은 후반부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되는 장소다. 양자의 달 역시 양자파편과 마찬가지로 관찰자의 시야에서 벗어날 때마다 늘 위치가 바뀐다.
태양계 6개의 행성 중 한 군데를 공전하는 양자의 달은 플레이어가 관찰하지 않을 때면 다른 행성으로 이동한다. 그렇다고 그냥 시야에 두고 착륙하려고 하면 가스처럼 통과된다. 결국 나중에 밝혀지는 바로는 관찰기로 관찰 + 플레이어가 동시에 봐야 행성에 착륙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양자역학에서 사진으로 보는 건 상관없고 스토리상 재해석에 가까움). 이는 노마이 기록에서 설명된 것처럼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거시적 양자 현상'이다.
여담인데 아이슈타인은 양자 달에 관해 언급했다는 기록도 있고.
We often discussed his notions on objective reality.
I recall that during one walk Einstein suddenly stopped,
turned to me and asked whether I really believed that the moon exists only when I look at it.
아이슈타인이 물리학자 아브라함 페이스에게 이런 말을 한 건 사실이나 '신은 (우주로)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했던 것처럼 우연과 확률의 개념로 인해 양자역학 안좋아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라서. 우연의 일치인 듯.
양자의 달은 '양자중첩 quantum superposition 이론'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관측되기 전까지는 양자물질은 모든 위치에 동시에 존재하나, 관측되는 순간 하나의 위치에 결정된다. 그래서 양자의 달은 관측 전까지는 서로 다른 상태에 동시로 존재하나, 관측 후에야 하나의 위치에 고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양자중첩 현상을 가져오면 양자의 달에 유일하게 생존한 노마이 종족인 '솔라눔'이 살아있는 것도 모순이 되어버리는데... 솔라눔은 노마이 종족의 순례를 위해 양자의 달에 도착했으나 때마침 태양계 바깥에서 온 침입자 혜성의 유령물질로 인해 그녀 포함 태양계에 있던 모든 노마이 종족이 사망한다.
다른 행성 근처에 위치하던 양자의 달에 있는 솔라눔은 유령물질에 의해 사망했으나, 우주의 눈 근처에 존재하는 양자의 달에 있는 솔라눔만 생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양자의 달에선 시간의 다르게 흐르고 있었는지 노아미가 멸종하고 28만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살아있던 것)
플레이어 중 누군가가 '관찰에 의해 결과가 결정된다면, 살아있는 솔라눔(정찰기 사진) - 죽어있는 솔라눔(플레이어가 보는 실제 장면)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건 모순이 아닌가' 제시한 것도 양자중첩 현상에선 모순. 하지만 SF니까!
또한 아우터 와일즈에서 나오는 '양자얽힘 Quantum entanglement' 현상도 실제 양자역학에서 인용된 것이다.
양자얽힘 현상은 모래시계처럼 움직이는 잉걸불 쌍둥이 행성에서의 동굴에서 경험할 수 있다. 양자 파편 위에 있는 상태에서 완전한 어둠(모든 불을 끄고 관측을 중단한 상태) 속에 있으면 사람과 파편이 얽혀 둘 다 다른 위치로 순간이동한다는 원리이다.
즉 양자파편 위치가 결정되면 그 곁에 있던 물체도 위치가 함께 결정된다는 건데.. 실제 양자 얽힘과는 상관없는 이론이다. 이름만 가져오고 재해석 한 거.
왜냐하면 실제 양자얽힘은 관측에 의해 하나의 양자 상태가 결정되면, 다른 양자의 상태도 동시에 결정되나 이는 장소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현상으로 설명되기 때문에. 그 위치가 얼마나 멀던 간에 상관없어서, 이는 곧 빛보다 빠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걸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좀 더 자세한 설명은 여기서.
https://qubit.donghwi.dev/basic/2
3.블랙홀과 화이트홀
아우터와일즈의 '조각난 공동 Brittle Hollow' 이라는 행성 가운데에는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거대한 블랙홀이 존재한다. 까딱 잘못하면 블랙홀에 빠져서 이상한 곳에 도착하는데, 사실 조각난 공동의 블랙홀은 실제 블랙홀의 이론 고증을 잘 살렸다고 한다.
행성 중심으로 떨어지게 되면 플레이어의 발 밑에는 블랙홀만이 존재한다. 그런데 블랙홀 근처의 빛들이 왜곡된 것처럼 보이는데, 왜냐하면 빛(light ray)이 블랙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궤적이 크게 휘어져 고리모양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떨어졌다고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건 아니라서 여기에 꼼수 부려서(= 마치 펠트스파처럼 하는 또라이짓) 일부러 떨어진 다음 양자 지식의 탑으로 가는 방법도 있긴 하다. '사건의 지평선 event horizon' 영역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탈출가능하다. 대신 무엇이든 들어가면 돌이킬 수 없는 명확한 지점인 사건의 지평선 안으로 들어가면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고, 한 번 들어간 물체는 탈출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블랙홀 어느지점에 들어가면 바로 빨려들어가서 화이트홀로 나가게 되는 것.
플레이어가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순간, 몸이 길게 늘려지면서 흡수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스파게티화 spaghettification'라고 한다. 블랙홀의 중력에 빨려들어간 물체는 조력 때문에 세로로 길어지면서 스파게티 면발같은 모양이 되기 때문이다.
블랙홀에 들어가면 화이트홀로 나올 수 있는데, 화이트홀에서 빛이 나는 건 블랙홀에서 흡수된 빛들이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화이트홀은 관측된 적 없는 이론적 요소라서 그러려니.
4. 우주의 죽음 - 태양의 초신성과 열죽음, 빅바운스
아우터 와일즈 속 태양이 폭발하는 원인은 튜토리얼의 박물관 모형에도 설명되었듯이 걍 때가 되어 우주가 죽을 때가 되어서다(..) 잉걸불 쌍둥이에 머무르고 있던 천문학자인 처트가 오늘 따라 초신성을 여러 개 발견한 게 이상하다고 하다가 태양이 점점 커지는 것을 보고 그들이 살고 있는 태양계 역시 초신성이 될 예정이며 우주가 곧 죽을 것이란 걸 깨닫고 패닉하는 것도 그 이유다.
실제로 태양이 초신성이 된다면 22분만에 죽진 않고, 몇십 억년에 걸쳐 죽겠지만. 아우터 와일즈에 나오는 태양의 죽음 역시 실제 이론을 축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태양의 수소가 모두 고갈되면, 헬륨을 원료로 핵융합 반응을 하느라 산소와 탄소를 생산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에 의해 점점 커지고 더 밝아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성과 금성을 삼킨 태양이 지구로 다가오게 된다. 지구는 태양이 발생시킨 열때문에 다 멸종할 예정이며 이 과정은 약 55억년 ~ 76억년 사이에 일어날 일이다. 다행이네 살아 생전 우주의 죽음은 안봐서!
크게 부풀어오른 적색거성이 된 태양은 최후에는 대부분의 빛을 잃고 원래 크기의 100만분의 1도 안되는 백색왜성으로 수축한다. 그래서 게임에서 엄청나게 커다랗게 된 태양이 최후의 순간에 수축하듯 아주 작아졌다가 '초신성 supernova'이 되어 터진다.
사실 게임에선 태양이 터지기 전에 아주 먼 우주로 도망친다면 초신성에 휩쓸리지 않는 방법도 있으나, 하루에도 몇 번씩 부자연스럽게 초신성이 발견되는 걸로 보아 우주 자체가 노화하여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우터 와일즈에선 태양의 죽음만 다루고 우주가 어떤 방식으로 죽는지는 얘기하지 않았으나 다양한 우주의 종말 이론 중에서 '열죽음 heat death' 을 차용하지 않았나 추측 중. 열역학 제 2법칙에 의하여 우주의 에너지를 모두 쓰고, 무질서한 엔트로피가 최대화되면 더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죽음을 맞게 되니까.
그러나 의식있는 관찰자가 우주의 눈에 들어간 순간, 현재의 우주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종말을 맞게 되었으나, 100억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후 새로운 우주가 탄생한 건 '빅 바운스 big bounce' 이론에서 가져오지 않았나 한다. 빅뱅을 순환-반복적으로 해석하면 우주는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고, 이전의 우주가 붕괴하고 특이점을 거쳐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내용 출처 :
김태우. (2014). 톰 스토파드(Tom Stoppard)의 Hapgood. 현대영미드라마, 27(3), 107-129.
케이티 맥, 우주는 계속되지 않는다
Push and Pull: Physics in Outer Wilds, https://www.giantbomb.com/profile/gamer_152/blog/push-and-pull-physics-in-outer-wilds/264418/
Qubit, https://qubit.donghwi.dev/ba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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