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9. 17:11ㆍFormosa/반교
게임의 번역과 관련된 제작진 인터뷰
반교:디텐션은 발매당시 중어판, 영어판 두가지 언어로 출시되었다. 최초 스팀에 나왔던 한글판은 영어번역을 가져온 것이다. 가장 마지막으로 나온 모바일버전은 중어판을 번역해서 내용이 좀 더 원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영문판은 중어판보다 게임에서는 단서를 알려주는 노트에 2가지의 문구가 인용된다. 첫번째는 영화에도 나온 타고르의 시다. 그러나 두번째는 영어판과 중어판의 번역이 다르게 나온다.
영어판, 그러니까 Pc버전에서는 두번째 인용의 문구가 이렇다.
"기억하자 희망은 소중하다
어쩌면 가장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희망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이 문구는 '쇼생크 탈출'에서 발췌된 것으로, 이 책이 나온 게 1982년이라서 60년대 시대상과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중어판에서는 이 문구가 완전히 다르게 나온다.
'인생에는 큰 희망이 있어야 하며, 열정과 인내로 희망을 알아야 한다'
이는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 발췌되었다. 이 책은 1차대전 이후 대표적인 반전소설이자 금서 중 하나였다.
반교:디텐션의 중어판은 60년대에 맞춰서 민남어(=대만 방언), 고전중국어, 현대중국어가 섞여있으나 스팀에 영어판도 동시에 올리려고 하면서 번역을 어떻게 옮겨야 할지 고민이었다고 한다. 제작진 중 한명이 영어도 할 수 있는 바이링구얼이라서 위의 쇼생크탈출 영번역은 제작자 의도로 생각된다. 그 외에도 제작진들이 게임을 만들면서 번역에 굉장히 신경많이 썼다는 장면들이 많다.
먼저 어휘들을 고심하여 번역된 부분이 많다. 어휘를 살리면서 번역하려 했던 경우 중 하나가 게임오버시 만나는 노파다. 이 노파는 대남방언인 민남어로만 게임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다. 영어번역에선 어찌 바꿔야 할지 고민하다가 방언과 고어, 현대어로 번역하는 대신 시적인 문법을 살렸다고 한다. 한국어로 번역된 노파의 말 역시 대화보다는 시에 가까운 운율을 가지고 있다.
또한 제작진은 종교, 민속문화에서 파생된 어휘는 어떻게 번역할까 하다가 아예 모르는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예로 망량이란 존재를 아시아권에선 다들 알고 있으나 서양권에선 낯선 존재니 영어로 직역하기 보단 Lingered(남겨진 자들)라고 바뀌었다.
반면 흑백무상의 경우엔 대만에만 있는 저승사자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영어권 사람들에겐 아예 모르는 존재니 음역으로 쓴 뒤 노트 속 그림을 통해 추가설명이 들어갔다.
추가로 인물들의 이름은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으나 성에는 신경을 썼다고 한다. 군인이자 교관인 바이(白), 교장의 딸로 국외로 도망쳤으나 결국 돌아오지 못한 은선생(殷. 선생이 대만으로 돌아오지 못한 건 계엄기간동안 민주주의를 옹호하던 시민들은 입국 금지되었기 때문이다.)은 모두 외성인이 자주 쓰는 성씨다. 외성인들은 1940년대 중국대륙에서 넘어와서 어느정도 국가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팡(方)과 웨이(魏)는 본성인이 자주 쓰는 성씨였다.
또다른 국내 인터뷰에선 한국에 대한 언급이 들어있다. 반교 디텐션 게임이 한국에서 예상 외로 많이 팔려서 제작진들도 놀랐다고 한다. 판매량 중 절반은 대만. 1/4는 중국 1/4는 그 외 국가인데 한국이 일본보다 많길래 기억하고 있다고. 제작진들도 계엄령이 내려졌고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역사의 유사성 때문에 그런거 아닌가 싶다고 말한다. (일본에서 한 인터뷰도 찾았는데 거기 인터뷰어는 일본의 역사게임 중 전국시대를 다룬건 많은데 2차대전 이후를 다룬 건 거의 없다고 얘기하네. 대충 그러니까 망하지 짤)
이 인터뷰어가 국내 게임시장 인터뷰를 언급하면서 한국은 게임자체를 콘텐츠로 바라보기 보단 서비스나 사업으로 본다는 일화를 얘기하니 제작진 왈 대만의 상황은 훨씬 더 나쁘다고. 레플리카, 코마 등 한국 인디게임에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게임에 정부지원이 많아서 부럽다고. 여기서도 인디게임은 살아남기 힘든데 자신들이 독특한 회사고 운좋아 흥행한거지 우리도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고 웃으면서 얘기하는데 아이고 오래오래 갔으면 좋겠다.
엔딩에 대한 제작진의 말이 인상깊다. '슬픈 역사와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이 두 가지 감정을 투영했다고 한다. 반교의 엔딩은 영적결말(배드엔딩)과 현실적결말(진엔딩)으로 나뉜다. 선조들의 비극적 역사를 접할 때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을 배드엔딩의 영적결말로 본다면, 진엔딩의 현실적 결말은 옛 비극을 알고 있음에도 현실을 살아가야하는 사람들, 역사를 더 잘 알기 위해 노력하지만 과거를 바꿀 수 없음을 아는 아련함이라고 언급한다. 그래서 반교 영화의 결말은 배드엔딩과 진엔딩을 따라간 것이었고.
반교 디텐션 게임 제작비화
원래 반교는 1인 개발로 진행하려던 3D모바일 게임이었다. 배경도 60년대가 아니라 훨씬 더 뒤였고. 하지만 작업량이 너무 많아 아 이건 홀로 제작하는 건 안되겠다 싶어서 팀원을 모으기 위해 프로토타입을 전시회에 보였고 이 게임에 흥미를 가진 개발자들이 모여서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는 1984를 모티브로 한 디스토피아 배경의 게임 만들고 싶었는데 대만의 한 시대를 적용할 수 있단 건 개발 시작 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역사적 중요성을 부여할 수 있다 생각하지 않았었고. 그 뒤 백색테러의 문제제기를 위해 간접적이고 허구적인 접근방식 채택했다.
그리고 환원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부터 유구하게 직원들 초상권을 굴리는 건 여전하다...
플레이 중 무서운 장면이 나왔나요? 두려워 마십시오! 그건 단지 지나가던 직원1의 사진일 뿐!
이번 7월에 시작한 반교 게임 전시회에서 이 프로토타입을 해볼 수 있는 체험전시가 마련되어있다고 한다. 대만에서 큰 흥행을 해서 영화전시회, 게임전시회를 종종 한 것 같은데 이건 따로 빼서 정리해보려고 한다.
게임 본편 공개 전 보인 데모버전까진 있었으나, 본편이 나오면서 제거된 요소들이 있다. 플레이어들이 추려낸 텍스트는 다음과 같다.
미사용 도구
-쑥 : 전통 민간요법에 쓰인다
-대광명주(大光明咒) : 주문 중 하나
-붕대:보건실에서 찾은 붕대로 팡루이신 상처 치유에 쓰인다
: 중간에 팡레이신이 다쳤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보건실로 간 듯.
미사용 쪽지
- 발치 : '늙은 군인은 정신이 녹슬어 그의 재산을 도박에 건 뒤, 이를 잃었고 죽어서도 빚을 갚기 어렵다' 쪽지와 함께 적힌 것으로 보아 데모판에 있다가 삭제된 채무어음 쪽지, 본편에 있던 진단서로 추측하건데 학교의 수위인 카오씨와 그의 동료는 학교에서 몰래 도박판을 벌였고, 큰 빚을 지자 폭력과 함께 이까지 뽑은 것 같다. 주사위가 이로 변한 것도 그 이유고.
- 학생증 : '허름한 학생증으로 나는 이 학생을 만난 적 없고 몇 반인지 모른다'
스크랩 : [철도사고] 새벽에 철도가 탈선해서 화물운반한 철도에 사고가 났었으나 문제는 없었음
스크랩 : [어떤 국가 대표자의 암살소식] : 차타고 가는 도중 총으로 암살,
: 아마 케네디 대통령 얘기하는 것 같은데. 1963년 11월에 사망해서 시대배경과 일치한다. 이 두 사건은 시대배경이 60년대란 걸 알려주는 내용인 듯.
스크랩 : [쟈오베이 던지기 설명] : 제작진 왈 복잡해져서 삭제함
스크랩 : [분향하기] : 향피우고 지전태우고, 역시나 복잡해져서 삭제함.
스크랩 : [팡루이신의 가정상황이 적힌 면담기록] : 팡레이신 아버지의 정확한 직책이 나옴. 면담기록이 찢겨져서 완전한 종이를 찾아야 했던 모양임.
스크랩 : [호송 중 도망] 은 선생이 도망가서 국외추방된 내용
백색테러를 다룬 영화, 슈퍼국민 코와 반교의 진엔딩
대만영화 온라인 상영전을 할 때 백색테러시기를 다룬 '슈퍼 국민 코(超級大國民)'를 봤었다. 독서모임으로 인해 정치범으로 수감된 사람이 30년 뒤,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당한 동료의 무덤을 찾으며 옛 동료들과 마주하며 과거를 되돌아보는 내용으로 반교가 이 영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듯 하다.
저 포스터의 2와 1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주인공의 동료가 군인들에게 끌려가면서 계엄령시기의 유일한 사형조항 2조 1항 - 국가반동혐의로 사형당한다는 걸 사형장으로 끌려가면서 마지막으로 감방에 있던 동료들에게 알리는 유언이었다. 반교에 나오는 전화번호를 거꾸로 하면 2조 1항을 나타내는 숫자인 것처럼.
그 외에도 장면전환 시 문구와 같은 텍스트를 통한 나레이션이나 인게임에 나왔던 지문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손, 피아노 키워드가 여기서도 비슷하게 언급이 된다. 과거를 마주하며 산속에서 잊혀진 동료의 무덤을 찾고 그 주변에 하나씩 촛불을 켜며 독백하던 장면이 게임의 진엔딩과 반교 영화 엔딩이 생각나기도 하고. 인상깊어서 적어본다.
첸, 삶이란 예측 가능한 게 아니잖나
우린 이 세상에 빛이 있다고 열심히 믿었거늘
다정하고 동정심 많고 이타적이던 자네들이 여기에 이렇게 버려졌다니
그늘져 차갑고 습한 이곳에, 지난 30년 동안 잊혀졌던 이곳에
허기와 추위를 견디며 고립돼 있었다니
하지만 날 믿어주게
산 우리도 같은 운명을 견디고 있네
단지 숨을 쉬고 있을 뿐
이렇게 왔지만 추워하는 자네에게
내가 가져다 줄 수 있는 건
이 작고 흐린, 조각난 빛뿐이네
언젠가 태양이 그 온기로 우릴 감쌀 날이 오겠지
난 항상 믿고 있네
하지만 그것이 너무 늦을지도
반교의 진엔딩은 나이든 웨이가 폐교된 학교로 다시 되돌아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웨이는 15년의 징역형을 받았다고 했으나 다시 돌아온 웨이의 모습은 30대라 하기엔 지치고 나이들어 보인다. 아마 이 때의 웨이는 30대보다 훨씬 더 나이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장제스의 아들인 장징궈 정권은 정치범 석방을 꺼려했고 1981년이 되어서야 백색테러시기에 잡혔던 정치범들을 석방시켰기 때문이다. (장징궈는 1987년에 계엄령을 해제시켰다. 반교가 나온 2017년 1월 13일은 계엄령이 끝난지 30년 되는 해이자 장진궈의 사망일이었다)
웨이는 선고받은 형보다 더 오래 구금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실제 사면증명서에는 민국 81년, 1992년에 출소되었다. 또한 나이든 웨이가 길을 가면서 배경으로 나오는 신문을 자세히 보면 년도를 추측할 수 있다.
이 신문텍스쳐는 실제 신문을 가져온 것으로 2015년에 발간되었다. 아마 웨이는 출소 후에도 끔찍했던 기억들을 외면하다가 학교부지가 팔린다는 얘기를 듣고 오랜 세월 후 외면했던 기억들을 마주하려 다시 한 번 학교로 되돌아간 것으로 추측된다. 슈퍼국민 코 영화에서 요양원에 나온 주인공이 오랜 세월이 지나고 희생된 동료와 옛 동료들을 마주하러 가는 것처럼.
반교 발매 쯔음 레드캔들 게임사 직원의 1인개발로 포인트앤클릭 게임인 'Stay with me'를 나온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취소된 것 같다. 이 역시 한 사람의 과거의 기억과 관련된 내용으로, 병원에서 혼잣말만 하는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와 상호작용하면서 과거를 추적하는 게임이라고 소개되었는데 취소되었다니 많이 아쉽다.
제작진 인터뷰 출처
https://www.thisisgame.com/webzine/special/nboard/11/?n=102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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