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osa/대만 밴드

대만인디밴드 붐은 온다 25. 대만 대중음악 역사편 - 고도로 파고드는 덕질은 논문요약과 구분할 수 없다 (1)

Bayads 2025. 10. 30.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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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광인의 헛소리에 가까운

 
 
내년 대만밴드 누가 내한할까 >  정부지원픽이 되지 않을까 > 그럼 대만 대중음악 전체 흐름을 알면 추측이 쉽지 않을까!
이렇게 뛰어넘는 사고의 비약
 

대만밴드 인터뷰 찾아보다 궁금해진 게 몇가지 있었습니다. 1. 인디인데 왜이리 인터뷰나 기사 기록화가 잘 되어있지 (몹시흡족) 2. 정부지원 인디밴드 보조금 지원이 여러 번 언급 된 거 보면 규모가 꽤 큰 거 아닌가.

정부지원 대중문화에 좀 집착하는 것 같긴 한데요. 지금 좀 사이버 한풀이 기간이라 그럽니다. 비영어권 공공극장 공연 덕질하다가
정권교체 극우정당에 직격타로 영향받아... 극장 운영방향성이 메잌 유러피언 그레잇 어게인! 외치며 20세기로 회귀하는데.. 걍 꼰대들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구려지겠다는 거 아닐까. 사람이 부정적인 것만 보다 보니 문화예술 지원 희망편 사례를 좀 찾아보고 싶어지는 거겠지요. 

여러 기사나 논문에서 읽은 걸 요약한 포스트지만, 오타쿠 특유의 과장과 확대해석, 관심사 취사선택으로 인한 날조와 생략이 있으므로 교차검증 필요합니다.
걍 재미로 읽으시면 감사합니다
 


 


1. 20세기의 대중음악 : 태초에 재즈가 있었샵밥두비두밥

 
https://www.youtube.com/watch?v=6g8yjzPD5cs

Whitey Smith 〈Nighttime in Old Shanghai〉

 
중화권의 서양음악 유입은 1920년대 상하이재즈부터 시작합니다. 왜 재즈부터 시작하냐면 그냥 옛날노래 좋아해서.

제가 옛날이라고 하면 100년전 노래를 말하는 거예요. 알량하게 2천년대 y2k부터 미적지근하게 가느니 화끈하게 20세기 초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와이탄에 재즈바가 많이 남아있음. 진짜 올드맨들이 하는 재즈밴드

 
20세기 이후 미국의 빅밴드가 아시아, 특히 개항도시 상하이에 오면서 중화권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 재즈가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상하이에선 중국 민요와 민속 음악, 전통악기 등 아시아 문화를 접목시킨 재즈 음악이 발달했고.

그러나 1949년 국공내전이 일어나면서 상하이 재즈는 사그라들었습니다. 동시에 그 전까지 서양과 아시아에서 활발하게 음악활동을 하던 중국 음악가들은 마오쩌둥 중국정부의 배척을 피해 홍콩, 대만으로 이주했고요.

20세기에 여러 사건이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중국 대신 홍콩과 대만에 대중음악이 발달하게 된 이유는 이 이유 때문. 스타트가 좋지 않은 곳을 스침.
 
https://www.youtube.com/watch?v=vUzpB4uWtGo

〈桃花泣血記 도화읍혈기〉

 
대만 최초의 대중가요는 대만어로 부른 〈桃花泣血記 도화읍혈기〉입니다. 상하이에서 만든 동명의 무성영화 대만홍보를 위해 1932년 대만어로 작곡한 음악인데요. 영화가 흥행하면서 콜롬비아 레코드에서 음반을 제작,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 후 망춘풍, 월야수, 우야화 등 대만에서 창작된 곡이 전국적인 유행가가 되었는데 앗 이거 반교에서 나온 음악들이잖아
 

과거의 포스트 캡쳐!

 
예전에 써놓은 글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거의 사이버 고고학자에 가까운 짓을. 근데 발굴하는 묘지가 과거의 본인 묘지임

여튼 계염령 시기에 저 대중가요들 다 검열되었다는 거군요 자체 스포일러도 당하다!
 
이전 글은 여기서. 와 첫번째 글이다!
https://backup899.tistory.com/1

 

반교:디텐션 해석(1) - 소품의 문화적 상징, 분석 정리글 (스포주의)

반교: 디텐션 영화정식상영을 기다리면서 쫌쫌따리 적었던 글을 백업 하고자 한다. 다시 플레이하면서 스토리 떡밥과 대만의 문화, 종교에서 비롯된 다양한 상징이 하나 둘 씩 다시 보였다. 몰

backup899.tistory.com

 
 

2. 20세기의 대중음악 : 계엄령 전후 중화권 음악시장을 장악하기까지

당시의 대중음악 뮤지션들

 
 
2차대전과 국공내전 이후 대중가요가 흥하기 힘든 환경에 1949년 계엄령까지 선포되면서 대만에는 대만어로 작곡한 대중가요 역시 탄압되었습니다. 게다가 2차대전 이후 대중음악의 침체기였던 50~60년대엔 방송을 통해 주류 대중음악으로서 흥행할 수 있었는데요. 미디어에 노출되는 대부분의 곡은 중국어 곡이었습니다.
이 당시에는 영화 음악과 일본음악 특히 엔카에서 영향받은 곡들이 인기였다고 하네요. 계엄 이전 활동하던 대다수의 음악가들은 생존을 위해 창작활동을 중단한 이유도 있었고.


종종 대만어 혹은 소수민족의 곡들이 레코드로 발매되기도 했으나,
대부분 전통민요가 아니라 흥행곡을 소수민족 언어로 번안한 곡 위주였습니다. 방송에서는 저속하다며 선주민들의 음악을 송출시키지 않았거든요. 우우 지들이 뭘알어

그래서 그 반동으로 21세기에 선주민 음악 지원이 확대된 걸까. 그거 찾으면 또 딴길로 새니까 일단 계속.
 

사실 옆의 애기가 귀엽다!

https://www.youtube.com/watch?v=5cF683jiE-o

현지 민요 녹음 중인 쉬창후이

 
와중에 60년대엔 쉬창후이(許常惠)는 대만에서 민요수집운동을 한 인물로 유명한데요. 오 사진 힙해. 본인도 이게 인생샷이 될 걸 예견한 시선처리.

여튼 쉬창후이는 자국의 전통문화를 되짚고 민족 음악의 뿌리를 추적하기 위해 위의 영상처럼 나이드신 선주민 부족을 찾아가 현장에서 직접 민요를 녹음했다고 합니다. 
 

통기타에 잠자리 선글라스 익숙한

 
그 후 70년대에는 대학생들이 모이는 캠퍼스를 중심으로 한 캠퍼스송(校園歌曲)과 민가(民歌)가 유행하게 됩니다. '우리 자신의 노래를 부르자'라는 슬로건 아래에서 대학생들이 자국의 정체성을 모색하기 위한 방식이었는데요. 통기타 하나를 들고선 포크음악에서 영향받은 이 스타일은 70~80년대에도 계엄령이었던 시대 대중음악인 만다린팝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 시기는 한국과 비슷한 양상같음
 

와 정말 빨갛다!

 
한편 중국에서는 뭐하고 있었냐고요. 60년대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대중음악발전이 멈춰버려서.... 
당시 유행가가 빨간 음악임..... 리터럴리 붉고 붉은 체제선동가...
 
위에 언급한 것처엄 중국 정부의 배척으로 대중음악 뮤지션들은 꾸준히 서양 혹은 홍콩, 대만으로 이주했었는데요.
70년대 후반 문혁이 끝나고 중국 본토에 대만 음악이 활성화 되었다고. 하기야 노잼선동가만 듣다 같은 언어로 부르는 유잼곡을 들을 수 있다는데 누가 예전 거 들어. 그렇게 중국에서 흥하는 대중음악은 주로 홍콩&대만의 음악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 영향은 21세기까지 이어지게 되는데요. 여기서 더 적기 시작하면 분명 또 딴길로 새니 일단 80년대부터 끝내기로 킵고잉
 
 

UFO 레코드 & 록레코드

 

80년대에는 대만의 대형 음반사 UFO레코드(飛碟唱片) & 록레코드가 설립되면서 대만의 대중음악 확산규모가 더욱 넓어집니다. UFO레코드는 90년대 워너뮤직에 인수되었지만, 록레코드는 40년동안 건재하며 음악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곳이기도.
2014년 기준 베이징 국가체육장 전석매진 한 공연이 모두 대만공연이었는데 그게 오월천(五月天, MAYDAY)과 록레코드의 30년 록페스티벌 이었다고 하네요. 사실 찾아보니 전석매진한 사례가 많은 것 같은데. 10년전 기준이니까 그러려니.
 
근데 록레코드 40주년 프로젝트 글은 썼네. 
왜지 진짜 왜 썼지
이번엔 9m88도 내한하니 많이 보러 와주세요 같이 소매넣기
 
《滾石40》 록 40, 대만 대중가요의 밴드 편곡 프로젝트 그리고 KST 내한 끼워넣기

 

《滾石40》 록 40, 대만 대중가요의 밴드 편곡 프로젝트 그리고 KST 내한 끼워넣기

요새 스포티파이에서 대만 밴드 디깅하다가 종종 《滾石40》 라는 커버 스타일이 비슷한 싱글앨범들이 보이길래이것이 무엇에 쓰는 앨범인고 궁금해져서 찾아보는 글.   처음에 이게 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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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抓狂歌 조광가》

 
1989년, 계엄령 종료 2년 후 대만 음악계에서 중요한 기점의 앨범이 하나 발매됩니다. 바로 블랙리스트 스튜디오(黑名單工作室) 라는 밴드의 앨범 《抓狂歌 조광가》 발매였는데요. 번역하면 '환장가'려나.

경박한 제목의 이 앨범이 대만 팝 음악사에 한 획을 긋게 됨. 그러니 앨범 낼 땐 최대한 이상한 이름으로 내서 어그로를 끌어야만.
 

당시의 대중음반

 
80년대 후반엔 계엄령 이후 대중가요에 대한 정부통제가 완화되면서 대만 사회에서는 탄압받았던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중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기존의 중국어 음악은 대만에 대한 정서적인 공감, 지역문화 성찰 부족하다는 논의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뮤지션들은 대만어로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블랙리스트 스튜디오의 앨범은 기존 유행하던 대만어 민요와 달리 대만 노래와 팝음악을 접목, 문화의 혼합을 보여주며 가사를 통해 대만의 정치, 사회, 사회운동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抓狂歌 조광가》 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사회풍자적인 논평을 담고 있는 가사에 포크음악+랩+록을 섞은 앨범이라 신대만어가요운동(新台語歌運動)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우바이와 오월천

 
이 신대만어가요운동은 대만 유명 락가수인 伍佰 우바이의 민요록 -> 락밴드 오월천의 음악스타일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데요.
 
음? 저 분 상견니 ost 그 분 아냐?
마치 외국인이 신해철 보고 프란체스카 앙드레 대교주잖아 무지에서 오는 무례한 발언 같긴 한데
어쩔 수 없음 대중문화 특히 드라마는 지식이 한없이 얕아서
 

블랙리스트 스튜디오 이건 예전에 장자샹 얘기할 때 언젠가 얘기해야지 킵! 해뒀는데 이때 꺼내다니
영영 뭉개려고 했는데 마치 노린 것처럼
 
생각난 김에 예전에 언급한 글은 여기서. 
https://backup899.tistory.com/78

 

그 대만밴드 2025 페스티벌 아님 내한 하니 - 곧

https://backup899.tistory.com/77 그 대만인디밴드 내한 왔니 - 아니눈 내리는 3월이지만 슬슬 2025 락페스티벌 라인업이 뜨고 있습니다그래서 올해 대만 밴드 대체 뭐가 온대는 거야 만대는 거야 분명 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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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진행자였던 추이타이징(崔苔菁)

 
 
그 후 1990년엔 대만의 대중문화 장려를 위한 문화부 주최로 金曲獎 금곡장(GMA) 뮤직어워즈가 열립니다. 1회 진행자는 당시 유명했던 가수인 추이타이징(崔苔菁)이었다고 . 드레스가 인상적이군요. 근데 초창기엔 상금 안주고 상만 줬다고. 진짜 모두가 다 아는데 돈은 없는 명예직!

그 후 금곡장은 중화권 대중음악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상이 되었다고 함.마치 그래미 중국어 버전처럼... 이 규모와 영향이  어느정도인지는 아직도 감을 못잡은 상태.

왜 대만음악이 20세기 중화권에서 강세가 되었냐고요. 위에 언급한 것처럼 중국은 70년대 후반 문화대혁명 끝날때까지 대중음악이 발달하기 힘든 환경이라 문혁끝났다! 가요듣자! 대중음악을 장려하기엔 좀 늦은 편이었음.

홍콩엔 '칸토팝' -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흥행한 광둥어 팝 역시 인기였으나 1997년 홍콩이 반환된 영향과 함께 20세기엔 시들해지면서 중화권엔 만다린팝이 주류가 됨.
 
 
이부분 관심사 아니라 빨리 21세기로 넘어가는거죠

유덕화는 올타임 레전드지만요. 이건 전문서적에 더 자세히 나올테니 일단 여기서 끊기로
 
 
 
 
 
출처 : 
施彣頴, 黑名單工作室:臺灣解嚴後之新台語歌運動, https://archive.taishinart.org.tw/event/talks/2023062555
傳統與跨界的前衛:1960年代台灣現代音樂與民歌採集運動, https://www.fountain.org.tw/article/taiwan-music-1960s
Taiwanese popular music: World War II to the 1960s, https://taiwaninsight.org/2018/07/11/taiwanese-popular-music-world-war-ii-to-the-1960s-pa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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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인디 밴드로 티스토리 오블완 챌린지

 

대만 인디 밴드로 티스토리 오블완 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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